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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이데아

작성자  |노아가다 작성일  |2026.02.26 조회수  |35

고흐의 이데아 노강(시인)


병오년의 새해가 밝았다. 오래 잊고 지내던 별을 문득 올려다본다.
밤하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는 한참만에야 고개를 들었다.
별을 그리던 사람, 빈센트 반 고흐가 떠오른다. 그리고 오래된 노래 한 곡. 돈 맥클린이 그를 위해 쓴 〈Vincent〉가 조용히 마음속에서 다시 흐른다. 노래와 함께 그의 그림들이 하나둘 어둠 속에서 떠오른다.
십 대 시절의 나는 고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Starry, starry night”라는 첫 소절이 시작되면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고, 이유 없는 눈물이 고이곤 했다. 그 슬픔은 이해에서 온 것이 아니라, 공명에 가까웠다.
아직 말로 가닿지 못한 어떤 감정이 별빛처럼 가슴 안에서 흔들렸던 것이다.

반 고흐의 삶은 흔히 ‘불행’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된다. 그는 화구상 점원으로 일했고,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갔다가 그 길에서도 밀려났다.
탄광에서 광부들과 함께 지내며 인간의 고통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았지만, 그곳 역시 그의 자리는 아니었다. 그는 늘 세상과 어긋난 존재처럼 떠돌았다. 그러나 그 방황의 끝에서, 그는 스물일곱이라는 늦은 나이에 비로소 붓을 들었다. 그 이후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짧은 생의 후반부는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세상에 오기 위해 준비해 온 시간처럼 보인다. 그는 남은 삶을 거의 전부 예술에 바쳤다.
이해받지 못한 채 그렸고, 팔리지 않는 그림 앞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동생 테오의 편지와 지지를 제외하면, 끝까지 그에게 남아 있던 것은 오직 예술뿐이었다.

“나는 내 안에 알지 못하는 어떤 생명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안다. 나는 이 생명을 해방시키려는 몸부림이다.” 이 고백은 그의 예술관이자 존재 방식이었다.
그림은 그에게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그리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었고, 표현하지 않으면 자신이 사라질 것만 같은 내적인 생명이 그를 끝없이 몰아붙였다.
그는 살아 있기 위해 그렸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재현이 아니라 발현이다.
소용돌이치는 하늘과 흔들리는 별빛, 과장된 색채와 거친 선들은 외부 세계의 풍경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 출렁이던 감정의 지도다.
그는 현실을 닮은 세계가 아니라, 현실보다 더 진실한 세계를 그리고자 했다.
그것은 무한에 대한 동경, 절대적인 가치에 대한 희구, 영원한 것에 대한 그리움이 배어 있는 세계였다. 고흐에게 예술은 장식도 기술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는 자신의 내적인 생명과 일치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끊임없이 고통스러워했고, 예술은 그 불일치를 견디기 위한 마지막 산소 호흡기였을 것이다.
고갱이 그의 자화상이 실제와 다르다고 비판했을 때, 고흐는 현실이 아니라 그림을 선택했다. 잘못이 있다면 그림이 아니라, 그림의 대상인 현실 쪽이라고 그는 믿었을지 모른다. 결국 그는 생을 스스로 끊었다. 그 순간 그의 영혼은 깊이 아프고, 극도로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삶이 멈춘 자리에서 그의 그림은 비로소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실의 삶은 초라했을지 모르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별들이 쉬지 않고 회전하고 있었고, 그 별빛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흘러들고 있다.

어쩌면 우리 안에도 고흐처럼 말로 다 하지 못한 어떤 생명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이상, 외면한 채 살아가는 꿈, 스스로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갈망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하고, 알면서도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눌러두며 살아간다.
반 고흐는 파리 북서쪽,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작은 공동묘지에 동생 테오와 함께 잠들어 있다.
생전에는 자신의 이름을 새길 자리조차 없었던 그는, 죽어서야 형제의 이름과 나란히 기록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예술가다. 
해바라기는 시들고 다시 피어나며 삶의 순환을 말하고, 〈감자 먹는 사람들〉 속 소박한 식탁은 일상의 존엄을 조용히 증언한다. 
그의 그림이 지금도 깊이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너무도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고흐는 위대한 삶을 살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삶을 끝까지 진지하게 대했던 사람이었다. 예술은 특별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불완전한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진실을 다해 표현하려는 태도 자체가 이미 하나의 예술이다.

반 고흐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성공의 신화가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려 했던 한 인간의 용기다. 그리고 나는 믿어 본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도 아직 꺼지지 않은 작은 별 하나, 조용히 숨 쉬고 있는 또 하나의 빈센트가 살아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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