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의 주인은 서두르지 않는다
노강(시인)
“이 집의 주인은 서두르지 않는다.”
이는 천재 건축가 안토니우스 가우디(1852~1926)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을 짓는 과정에서 당국의 성급한 요청에 답하며 남긴 명언이다.
1852년 코르 네트 레우스에서 태어난 그는 자연과 신앙, 철학이 어우러진 독창적인 건축물로 세계를 매료시켰다. 그의 건축물들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에 따라 생명력을 간직한 예술 작품이다.
가우디의 철학과 예술혼은 스페인의 정체성과 경제적 성공을 동시에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그의 유산은 현대에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스페인은 가우디 덕분에 매년 약 14조 원의 관광수입을 올린다.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몰려드는 전 세계 관광객들로 인해 도시는 활기를 띠지만, 이로 인해 현지인들이 외곽으로 밀려나고 건물이 숙박업으로 전환되는 부작용도 생겨났지만 이는 단순한 경제적 효과를 넘어, 가우디가 스페인 사람들에게 남긴 자부심과 긍지를 보여준다.
그의 건축물은 곡선과 자연의 원리를 존중하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과 가치를 지닌다. 까사 밀라, 까사 바 테요, 그리고 구엘 저택이 바로 그 예다. 무엇보다도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1883년~)은 아직도 건축 중이지만, 이미 전 세계적인 성지로 자리 잡았다.
최근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면서 가우디의 예술 세계와 스페인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가까이서 느끼는 특별한 쉼의 시간을 가졌다.
파밀리아 성당에서의 미사를 드리는 영광을 얻었으며, 또한 카탈루냐 음악당에서의 존 윌리엄스 영화음악 관현악 오케스트라관람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벤허, E.T, 타이타닉, 쉰들러 리스트, 록키 반지의 제왕 등 익숙한 선율이 울려 퍼질 때, 관객들은 각자의 언어로 합창하며 전 세계인이 하나가 되는 감동을 선사했다.
이는 가우디가 남긴 철학이 건축을 넘어 음악과 예술이 그들의 삶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스페인의 도시는 단순히 오래된 건물로 가득 찬 곳이 아니다. 100년이 넘는 고딕 양식 건물들이 도시를 거대한 박물관처럼 만들며, 이는 스페인 사람들의 삶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여유와 낭만을 반영한다.
테라스에서 커피와 와인을 즐기며 거리문화를 만끽하는 모습은 스페인의 삶의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의 느긋함은 가우디의 “서두르지 않는다”라는 철학과도 맥을 같이한다. 반면,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때로는 인간성을 잃고 지나친 속도전으로 원칙이 상실되어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자동차, 반도체, 조선업 등에서 위상을 자랑하지만, 정치와 사회의 모습은 아쉽게도 선진국의 면모와 거리가 멀다.
북유럽의 스웨덴 정치인들이 특권을 내려놓고 봉사하는 자세로 국민의 존경을 받는 것과 달리, 한국의 정치권은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건만 국민이 원하지 않은 계엄과 탄핵의 남발로 끝없는 대립을 반복하고 권력을 위해서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직선으로 가고 있다.
가우디가 남긴 교훈은 단순한 건축철학이 아니다. 그는 원칙과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의 방식을 가르친다. 이를 한국의 재건축 문제와 같은 사회적 이슈와 정치권 문제들을 대입해 보면, 단기적 이익보다 후손에게 자랑스러운 유산을 남기려는 긴 호흡의 철학이 서두르지 않으면서 뿌리 내리지 않을까?
여행 중 스페인의 거리에서 현대차를 보며 자랑스러움을 느끼고, “소지품을 조심하라”는 한국어 안내문을 보며 웃픈 현실에 공감하기도 했다.
한국의 현실은 청소년들이 주입식 교육과 경쟁으로 시험에 쫓기고, 청년들은 취업에 쫓기며 때론 실업자가 되어 젊음이 시들어 가고 있고, 젊은 부부들 대다수가 맞벌이로 지쳐가고 있다.
나이 들어서도 쉼이 없이 일하기 바쁜 나라가 한국의 국민들이다.
쉼의 시간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스페인 사람들의 삶은 분명 여유로웠고, 그들의 삶 속에 스며든 가우디의 철학은 여행 후에도 깊은 인상을 주었다.
지금 우리들의 삶에 대해서 서두르지 않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쉼이 필요하지 않을까?
2025년, 을사년 새해를 앞두고 우리는 “서두르지 않는” 철학을 한국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단순히 경제적 성취에만 머무르지 않고, 긴 안목으로 자연과 사람을 존중하며 백 년 후에도 자랑스러운 건축과 문화를 남기는 것이 진정한 선진국의 모습일 것이다.
가우디의 건축물처럼, 우리들의 삶도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